[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2022년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산업 각 분야의 시장이 경직된 가운데 유독 배터리 산업만 호황을 누렸다. 특히, 전기차 판매량 증가에 따라 핵심부품인 이차전지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중국이 내수시장 확대와 규모의 경제 전략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 등 탈중국을 목표로 새로운 미래 전략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활약 중인 K-배터리 3사 또한 이러한 시장 변화에 맞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지는 2022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달군 주요 이슈를 키워드로 정리해 이를 통한 2023년 배터리, 이차전지 시장을 전망해봤다. 배터리 산업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혼란스러운 국제적 경쟁 국면과 주도권 싸움, 공급망 확보와 차세대 기술 개발 경쟁 등 시장의 흐름을 크게 변화시킬 이슈로 넘치고 있다.
전쟁(WAR)
K-배터리 3사의 유럽향 매출은 전체 매출의 65~80%를 차지할 정도로 유럽은 큰 시장이다. 그러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정세가 혼란스럽다. 유럽 내 전쟁으로 급등하고 있는 유럽 에너지 가격에 따라 생산원가가 상승하고 있으며, 전기차 보조금 지원도 줄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금리 인상을 쫓아가지 못해 전기차 보급과 배터리 수요에는 더욱 악영향이 되고 있으며, 브리티시볼트와 노스볼트 등 유럽 내 배터리 공장의 증설에 제동이 걸리면서 더욱 암울한 분위기 속에 있다. 그러나 전쟁이 종료될 시 에너지 가격 안정화 등 다양한 부정적 요인이 해소되면서 글로벌 배터리 산업을 키우고 시장을 견인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경제 패권을 쥐기 위한 미-중 경쟁이 무역에 이어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산업에서도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또한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가 미래 핵심 산업으로 분류돼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IRA 전기차 세액공제 관련 조항(Section 13401)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미국에서 전기차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최종 조립 조건 △배터리 핵심 광물 조건 △배터리 부품 조건 등 IRA 법상 규정된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가 아니면, 그리고 일정 비율 이상의 핵심 광물과 부품이 미국 또는 미국의 FTA 체결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미국 시장 내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내용이다.
이에 국내 주요 기업들은 북미 지역 내 배터리 핵심 원재료 기업들과 중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현지 생산 거점을 늘리는 등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미 지역 내에서 배터리 핵심 원재료를 채굴 및 가공하는 업체들과 중장기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더불어 배터리 장비 기업 등의 북미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어 이와 관련된 지원과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Supply Chain)
미국의 IRA와 같은 탈중국을 위한 움직임은 유럽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EU는 최근 개최된 유럽의회에서 ‘유럽핵심원자재법(RMA)’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법안은 리튬과 희토류 등 주요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현지 및 동맹국 생산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EU는 2026년 ‘배터리 패스포트’라는 새로운 배터리 규제를 가동한다. 구체적으로 ESG 성과, 배터리 제조이력, 성능 업그레이드 이력, 배터리 수명연장 및 재활용 데이터를 담은 배터리 정보를 기재해 제품을 신뢰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원재료 공급망 다변화 능력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기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중국 등 일부 국가에 몰려있는 의존도를 낮추고, 국제 정세 변화와 이슈 등 경영 불확실성 요인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공급망 능력을 갖추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EV)
중대형 이차전지 시장 확대의 가장 큰 요인은 전기차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SNER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965만대로 전년대비 49%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판매량 제외하면 385만대로 전년대비 16%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3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1,280만대로 33% 증가가 예상되며, 중국을 제외했을 시 480만대로 전년대비 25%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풀이하면 중국 주도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판매 지수가 미국, 유럽에 조금 더 옮겨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3년 북미 전기차 판매량은 200만대로 전년대비 70% 증가가 예상되며, 전기차 배터리 탑재량은 142GWh로 95%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내재화(In-house)
글로벌 배터리 수급 불균형 혹은 부족 상황에 생겨난 변화 중 하나는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배터리 생산 내재화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핵심부품으로 배터리 기업들의 납품과 수주 구조가 전기차 판매의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전기차 판매에 있어 주도권이 배터리 기업이 될 수도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에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불안정한 배터리 수급 상황에서의 유연성 확보와 자사 전기차에 특화된 공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해 내재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배터리 자체 생산이 갖는 리스크 또한 존재해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기존 배터리 기업과의 협업이나 합작투자 방식으로 일부 내재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테슬라는 2030년까지 3TWh 규모의 배터리 생산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있으며, 현대차는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중심의 내재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5년 시범 양산 이후 2030년 본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노스볼트와 협업을 통해 2030년까지 40GWh의 6개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240GWh 생산능력 구축을 계획을 발표했으며, 볼보는 노스볼트와 합작 배터리 공장 설립을 통해 2026년부터 연간 최대 50GWh 수준의 배터리 생산능력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폐배터리(Battery Recycling)
전기차 판매에 따른 배터리 공급이 늘어나면서 업계에서는 폐배터리에 대한 활용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제에너지기구 IEA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660만대로 전년대비 2배 상승했다. 2020년 대비 약 32배 증가한 수치다. 이에 따라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 규모도 급성장할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폐배터리 시장은 2030년 20조원에서 2050년 600조원 규모로 연평균 39%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5~15년으로 사용 후에도 초기용량의 70% 이상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수명이 다한 이차전지에 대한 재사용 및 재활용 산업이 주목되고 있으며, 특히 사용후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 검사를 통해 ESS 등으로 새롭게 활용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또한, 폐배터리 재활용은 향후 거대 시장이 예상되는 분야로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배터리 제조 원자재를 100% 수입해야만 하는 우리나라가 놓쳐서는 안 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에 관련 R&D 및 투자 확대는 물론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 부처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는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표준화 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요구 및 재활용 비율 규제 등에 대한 표준화 대응방안과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얼라이언스(Battery Alliance)
최근 산업부 주도로 2030년 이차전지 세계 최강국 지위 달성을 비전으로 하는 ‘이차전지 산업 혁신전략’이 발표됐다. 이 전략의 핵심 중 하나로 국내 배터리 산업 분야 협의체인 ‘배터리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다.
중국의 급격한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대에 따라 국내 배터리 주요 기업들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 체세대 배터리 연구 등의 과제도 남겨져 있다. 이에 배터리기업, 소재기업, 정·제련기업과 공공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통해 2030년 세계시장 점유율 40% 달성과 지속적인 산업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배터리 얼라이언스는 핵심광물 지도작성, 프로젝트 발굴, 정제련 사업추진, 금융지원 등 광물확보 관련 전 단계 활동을 추진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이슈에 맞춰 대응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